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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SONSHIP MENTALITY – 박종범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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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아이들 ‘키우는’ 아빠다! 물론, 자녀 양육의 대부분은 아내의 몫이기에 내가 아이들을 ‘키운다’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 된 우리가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일일 것이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매일 아침 학교에 챙겨서 보내야 하는 준비물도 적지 않다. 싸인 한 레터, 반납해야 할 도서들, 숙제 그리고 도시락 3개… 그날 아침도 서둘러 아이 셋을 등교 시키다 보니, 학교 교문에 이르러서야 둘째 아이가 자기 가방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황스러웠고,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순식간에 내게 몰려 왔다. 아빠의 권위를 실어, 한 마디 훈계를 하려고 할 때에, 오히려 둘째 아이가 먼저 cool하게 말을 시작했다!

     “아빠 집에 돌아가서 가방 가져와 주세요! 가방에 숙제가 있으니,
     오전까지 꼭 가져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나요! ”.

이렇게 말을 남기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교실을 향해 달려간다. 어이가 없어서 잠시 그 자리에 멍 하니 서 있었다. 느닷없는 훈계(?)를 듣고 잠시 멘붕에 빠진 것이다! 이후에 일이 어떻게 수습되었겠는가? 둘째 아이의 바램대로 모든 상황은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죄 없이 내린 런던의 첫 눈을 원망하며, 얼어 붙는 눈 길을 헤치며, 숙제가 든 아이의 가방을 들고, 학교로 다시 걸어 와야만 했었다.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특별히, 그 부탁의 대상이 부모일 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된다. 부모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리라는 믿음은 좀처럼 찾아 보기가 어렵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학교를 마친 후에 일어나는 일상도, 그날 아침 사건과 대략 비슷하게 흘러간다. 아이들은 픽업 간 아빠를 보자 마자, 굶주린 사자처럼, 맛있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라댄다. 그리고는 내가 타협안을 구상하느라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세 아이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근처 가게로 달려간다.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힘 없는 아빠는 여지없이 5파운드 지폐를 가게 점원에게 건네야만 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배우는 영적인 교훈들이 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요청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절대믿음]이 있는 듯 하다. 어떤 문제든 아빠에게 말하기만 한다면, 숙제가 든 가방도, 먹고 싶은 과자와 아이스크림도 모두 '실제'가 됨을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누가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었을까? 누군가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녀이기에 ‘그냥’ 아는 것이다. 영적인 진리도 동일하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늘 아버지께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영적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 아니던가! 어린 아이들은 그 복음의 핵심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린 언제가부터 하늘 아버지 앞에서 너무 영리한 아이이고 싶어하진 않았을까? 합당한 것 만을 구하고, 아버지 마음 아픈 것을 치나치게 헤아리다 보니 너무 성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러감에 어린 아이의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지만(고전13:11), Sonship까지 버려야 하는 것일까? 하늘 아버지 앞에서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절대믿음]으로 신앙하며 살 수는 없을까? 나는 영리한 자녀이기보다, 하늘 아버지 앞에 순전한 자녀이고 싶다! Sonship Mentality,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