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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기다림 (복음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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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복음과 그리스도)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하게도 저는 목회자로서 꽤 일찍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청소년기 겨우 턱 밑이 거뭇거뭇할 때 무슨 마음으로 목회를 생각했는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직장생활도 경험하고, 세상의 학문도 경험하여 돌고 돌아 목회자가 되었지만 저는 그것조차 아깝다는 생각에 학업과 군복무 십 몇 년을 쉬 마치고 바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젊다는 것은 자칫 성급함의 누를 범하기 쉽습니다. 열정은 좋지만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불편을 줄 수 있습니다.

열정을 다하여 공부하였고 신 대원을 졸업한 그 해  목사안수를 받던 그날이 기억됩니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지, 당시의 제 기도는 이러했다고 기억됩니다. “주님 주님은 그냥 가만히 계세요. 그동안 십자가에서 얼마나 힘드셨나요. 이제 제가 끝장나게 잘 할테니깐요!” 재미있는 표현인지 몰라도 아무튼 이런 류의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교도 쉽게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났었던 미국 선교사님들은 모두 나이가 들어 있었고 거동조차 부자연스러웠기에 그것에 비하여 저는 더욱 많은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던 그해 그달에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젖먹이 아들 손을 잡고 사모와 아무 후원이 없어도 젊어서 고생한번 못할 까 싶어서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훈련장소를 찾는 것부터 막히기 시작하여 하나둘씩 막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의를 상실하고 점점 생활인으로 굳어지면서도 목회자라는 타이틀이 부담감이 되었을 때 골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도 미웠고 교회도 미웠고 더욱 제가 몸담고 있던 장로교도 미워서 골방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몇 날 몇 일을 하소연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기도라기보다 푸념과 원망이었다고 기억됩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1년, 2년을 홀로 조용히 기도하는 골방을 통하여 저는 과연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알아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다림이었습니다. 행1: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말씀 속에서 성령은 내가 그것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여진 그 때에 그 시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가 그러하였고 복음을 들고 뛰기 시작하였던 사도행전이 그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기다림 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이었으며 주님의 약속의 성취이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리고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노동을 시키시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 자녀들이 성령 충만하여 기쁘게 지내기를 더욱 원하십니다.(빌 4:6-7) 성령 충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통하는 시간입니다. 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하신 그 주님은 오늘도 복음의 선포와 깨달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선물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복음은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은 내가 그 속에서 아주 많이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온통 권능을 받는 것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것에 너무 집중하여 바빠져 버렸습니다. 바쁜 중에 내가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먼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잡고 빨리빨리 따라오라고 오히려 주님을 채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향방 없는 일꾼이 되어 바쁘기는 한데 허망과 절망에 그 피곤함에 지쳐 쓰러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누리도록 독려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깨닫는 자들의 소유가 되어 질 것입니다.      

런던엘림교회 양성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