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라는 말인 ‘Providence’는 라틴어의 ‘providentia’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pro’는 ‘~의 앞’에 또는 ‘미리’라는 말이고, ‘videntia’는 ‘보다’라는 뜻으로 라틴어 ‘videre’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말에서 비디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의미를 모두 합치면 ‘미리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적과 신비한 능력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끊임없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란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일하시는 분임을 보게 됩니다.
에스더서의 클라이막스는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제작한 교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수대는 약 23미터 높이였습니다. 하만은 페르시아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고 그 일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 음모로 모든 유대인이 죽기 전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먼저 죽이려고 교수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수대로는 모르드개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나를 죽이기 위해서 세운 교수대는 무엇입니까? 수술이 필요한 질병, 머리까지 쌓인 스트레스,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깨어진 관계, 장래에 대한 불확실, 경제적 파국 등과 같은 것이 여러분의 교수대입니까? 그러나 그러한 교수대로 인하여 당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잠히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크세르크세스(485-465)’로 추정합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점령했고, 캄비세스 왕이 이집트를 점령했으며, 다리오 왕이 인도를 점령했습니다. 그 다리오 왕의 아들이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그는 왕이 된 3년에 약 6개월 동안 전국의 귀족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호화로움을 나타내는 잔치였습니다. 앞으로 있을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잔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잔치 후에 수산성에 백성을 위해 7일간의 잔치를 베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잔치 말미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왕이 주흥이 일어나자 왕비를 불러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 왕후는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그 앞에 나가지 않고, 왕은 그러한 왕후의 행동에 진노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뚜껑이 열린 거지요. 술에 취한 왕이 이성을 잃을 만큼 진노하자 왕의 기색을 살피고 그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므무간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자신의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아내들이 남편을 존경하게 하는데 법까지 동원하자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게 되지요. 이 므무간의 제안은 결국 왕후 와스디가 폐위가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무슨 결정이든 화가 난 상태에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이 왕후의 자리를 에스더가 차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간, 에스더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를 왕후로 천거한 모르드개는 앞으로 있을 유대인 말살 계획을 미리 알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우리의 가슴에 새겨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교수대와 같은 엄청난 어려움이 닥쳐오게 된다면, 하나님이 무관심한 분으로, 나에게서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일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던 하만의 유대인 말살계획의 위기에서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에서부터 손을 대시기 시작한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만약 지금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21:1)
하나님의 섭리는 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섭리가 내 삶을 이끌고 있습니다. 나의 가정을 향해, 우리 교회를 향해, 내가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업을 향해 하나님은 섭리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동적으로 와스디처럼 없어지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능동적으로 그 섭리의 주인공이 되는 에스더와 같은 삶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페이지의 한 부분을 써내려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로 그 섭리의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