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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짜가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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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가와 가짜

                
홍콩 느와르의 상징인 청킹맨션 앞에는 오늘도 한국말로 “아줌마 짜가 있어요” 라 외치는 인도인 ‘삐끼’가 있다. 우리 시대에도 홍콩의 ‘로렉스’ 짜가를 혼수로 장만하던 때가 있었다. 그 짜가의 가짜도 만들지 못했던 시대다(60-70년대).
일배와 나는 짜가의 맛을 제대로 보면서 그러나 그는 먼저 소천했다.
신학을 하면서 ‘진짜 같은 가짜 목사’와 ‘가짜 같은 진짜 목사’를 구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남의 진위 논하기 전, 내 스스로에게 잣대를 대고 가늠한다면, 겸손하게 죄인이라 말하기 이전에 나나 잘하면 되지 뭐 남 탓하랴 손사래 치고 만다.
군, 회사, 혹은 어느 집단에 속해있든, 성과 속을 불문하고 가짜는 아니래도 ‘용팔이 완장찬’ 모습의 사람은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약은 사람은 그들로부터 피해가는 방법을 알지만 둔한 우리는 그들 때문에 헛된 속앓이만 해댔다. 일배와 나는 ‘신분 세탁, 신분 상승, 신분 사대주의’ 라는 세 부류를 영국에 살면서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제일 먼저 신분 세탁이다.
신분이 탐탁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에 살다가 영국에 정착한 경우다. 대개의 경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로 내빼는 경우가 많은데 어쩌다 이곳에 와 여러 직종에 종사한다.
범법자이거나 민사사건에 계류 중인 사람들 혹은 동종업계의 ‘찌질이’로 남기 싫어 이곳에서 과거를 묻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런 분일 수록 특히 한국에서 잘 나갔었다고 뻥 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세탁 후 깨끗해 지는 게 아니라 더 더러워진다. 더 눈에 띄게 되는 데 본인만 모른다. 특히나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피하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드러나게 되면 이곳에서 적절히 시기를 보아 한 탕하고 제3국으로 잠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다음은 신분 상승을 살펴보자.
안에서 깨진 바가지 밖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에서도 못한 귀족적 엘리트 계급을 구사하려고 치열하다. 문제는 한국의 귀족적이라는 개념과 이곳은 사뭇 다르다. 영국인들 자체가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가 우리보다 덜하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자나 귀족이면 그대로 인정하는 분위기에 익숙해 지려면 몇 년을 더 살아야 할까? 정말 엘리트 귀족층이 노는 데를 들여다 보기도 어렵다. 수 많은 사교 클럽과 다니는 장소도 다르다. 마주칠 일이 없다. 마주쳐야 할 법적인 문제는 대개 개인 변호사가 상대한다. 이런 부류를 탐하는 한인들은 그런대로 돈이 있다. 그러나 돈과 신분상승과 같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졸부라도 적어도 3대 후에야 부자대열에 낄 수 있는 이곳 아닌가?

신분 사대주의에는 정말 무식한 고집쟁이가 많다.
비교적 단기 체류 경우 심하긴 한데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도 종종 이 사태가 나타난다.
한국에서 ‘부대 찌개’의 비극을 아는 것으로 비유하면 좋을 것 같다.
어릴 적 서울 용산구쯤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피자와 소시지와 베이컨 굽는 냄새의 묘한 조합이 부대 찌개와 닮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미군 부대 쓰레기 담당하는 한인노무자들에게 특별히 부탁해 먹을 수 있는 모든 식당 쓰레기를 받아다가 몇 시간 이고 끓여낸 스프이다. 어떨 때에는 커피도 섞여 색깔이 진한 고동색일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철도 변에 한 없이 늘어져있는 판자촌이 주요 고객이었다. 특히나 미국의 배급 밀가루와 우유가루 옥수수 등을 동회에서 배급 받아 본적이 있는 사람만 아는 것이다. 요즘 왜 이리 부대찌개조차 미화하고 진정성을 잃어버리는 지 모르겠다. 역사적 비극은 사실 그대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나라이고 빈부,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대로 재현하는 역사 박물관이 있다. 잊지 말자는 것이다. 불행한 민족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괜히 나는 주제를 조금 벗어나 열 받고 있는 거다. 어쨌든 미제는 뭐도 좋다고 했던 비극의 역사를 답습하는 행위가 이 곳에서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애국적 민족주의자를 운운하는 건 아니다.

이들에게 본받을 것은 본받아야 하지만 굳이 본받지 않아도 될 것까지 그럴 거야 없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한국과 영국의 장점만 받아 들이면 좋겠는데, 잡종열세처럼 각기 단점만 교묘하게 조합하는 예가 사대주의의 함정이다. 교회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로부터 고귀한 전승들을 여기서는 아예 다 없애 버리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맞지 않는 옷 같은 여러 프로그램들을 사대적으로 답습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머리만 허연 사람들만 모여드는 영국교회를 꿈꾸나 보다. 교회역사가 우리보다 길기 때문에 본 받아야 한다고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다.
피자를 포오크와 나이프로 먹든 가위로 잘라 손으로 뜯어 먹든, 스파게티에 숟가락이 필요하든 하지 않든, 포도주 잔을 항아리형을 쓰던 소주잔 비슷한 것에 마시든, 문화에 동화하는 것 까지는 괜찮지만 폄하 혹은 과장되게 마치 이런 식이어야 한다고 으스대는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다.
3대가 지나 혹 우리 후손들이 여기서 그냥 산다고 하면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생생한 뿌리는 여전히 한국인 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지독한 경우는 이 ‘신분 세탁, 신분 상승, 신분 사대주의’ 가 모두 악성으로 결합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제대로 가짜인 짜가다.

일배는 이런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유난한 감성과 까도남 스타일의 깔끔함이 때 묻지 않으려는 순수한 나름 아픔이 많았다.

오늘은 그의 무덤에 장미 한 다발을 가져 갖다가, 영국의 삶 같은 비바람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다른 무덤 주위의 꽃들을 보고, 한 송이만 잔디 깊숙이 꽃아 놓고 나머지는 이제 조금 슬픔을 어거한 모습의 사모에게 갖다 줬다.

런던영락교회  우 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