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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전쟁을 바라보는 눈

아자 가트(Azar Gat)는 문명과 전쟁(War in Human Civilization)이라는 책에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라고 할 만큼 그 뿌리가 깊고 인류의 발전과 문명의 터전 위에 함께해 왔다고 진단합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전쟁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망자 숫자에 대한 세계랭킹 10위 통계를 보고 새삼 놀라게 되며, 인간의 죄성과 악함이 전쟁에 그대로 투영됨을 통계숫자로 바라보게 됩니다. 10위는 러시아 내전으로 900만명 사망, 9위는 1차 세계대전으로 1500만명 사망, 8위는 티므르 정복전쟁으로 1700만명 사망, 공동 6위는 태평천국의 난과 스탈린의 학살로 2000만명이며, 5위는 명,청 전쟁으로 2500만명이며, 4위는 당나라 안사의 난으로 3600만명이며, 공동 2위는 몽골의 정복전쟁과 중국 마오쩌뚱의 내전으로 4000만명에 이르며, 가장 불명예스런 1위에는 전세계가 전쟁에 휩싸인 2차 세계대전으로 최소 700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비록 대략적인 통계라 할지라도 전쟁의 참혹함과 무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쟁사망자 통계 랭킹 공동 6위를 기록하며 자국민을 가장 많이 죽게 만든 소련의 스탈린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는 경악을 금치못하는 사악한 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진균 교수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지금까지 대략 150회 내지 160회의 전쟁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졌으며 또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중국내전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6.25전쟁, 베트남전쟁, 4차에 이르는 중동전쟁, 이란.이락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많은 아프리카 전쟁 등등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시국에도 동유럽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21세기 가장 처참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인의 인구가 17.8%에 이르고,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지만 상용어는 러시아를 사용할 정도로 매우 친밀했던 나라였을 뿐만 아니라, 1991년 12월에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같은 연맹체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적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의 상황속에서 왜 하나님은 인류 역사 가운데 전쟁을 허용하시는지를 그리스도인의 시각을 갖고 고민하게 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전쟁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몇 가지 전쟁에 대한 관점을 피력합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허용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의 결과를 징벌로써 감당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법칙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는 메시지입니다. 죄의 결과에 대한 징벌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나라와 민족도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 가운데 가장 많은 장수를(총 66장) 기록한 이사야서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열강들과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멸망의 이유를 언급합니다. 우상숭배로 시작해서 교만과 무자비한 살육과 거짓과 친절을 베풀지 않음과 원수의 잘됨을 비방함 등 다양한 죄에 대한 심판의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대표적인 통로가 전쟁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이유 없이 징벌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님을 이사야서는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허용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전쟁을 통해 인간들이 저지른 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전쟁은 죄악된 인간의 사악함과 본질상 진노의 자식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통로입니다. 마치 사진의 픽셀처럼 인간들의 사악함과 죄악의 모든 조각들을 한 조각 한 조각 합쳐서 모아보면 전쟁의 완성판으로 죄악되고 사악한 모습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러시아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군 시설과 군인들만을 향해 총과 대포를 쏘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보다 저항이 거세어지고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는 인정사정없이 병원과 학교와 민간 거주지에도 총과 포탄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어린이와 노약자와 전쟁과는 상관이 없는 시민들의 사상자가 거침없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에 붙들린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전쟁을 통해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허용하시는 세 번째 이유는, 이를 통해 결국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 인간이 의지하고 소망하는 모든 것들을 벼랑끝으로 몰아갑니다. 더 이상 다른 것으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인생들을 향한 마지막 하나님의 히든카드가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전쟁으로 인해 생과 사를 넘나들고 인간의 가치가 총알 하나에 포탄 한 방에 사라질 수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더 이상 기대고 의지하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인생의 벼랑끝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BBC 특파원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삶의 주거지인 Khakiv를 떠나 슬로바키아 난민캠프로 피난을 간 세 아이의 엄마인 Nasta는 울먹이며 말합니다. “We don’t hate Russian people. We hate war.” 어린 자녀들을 부등켜안고 울먹이며 전쟁을 미워한다고 말한 Nasta의 말이 가슴을 저며옵니다. 사실 전쟁은 전인류의 공통된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마다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약속과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과 다툼과 끝없는 욕망은 전쟁의 창구를 통해 수시로 역사의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많이 역사가운데 반복되고 반복되었던 전쟁의 뉴스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미워하는 평화주의자로서만 서 있을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악한 욕심으로 시작된 전쟁을 방관자로만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과 죄악에 대한 보응이라는 체념적인 운명론자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벼랑끝으로 몰아가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히드카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죄의 자리로부터 회개하기 원하시며, 회복시키기 원하시며,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 원하시며, 이 전쟁을 통해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세워지게 하시고, 전쟁이 멈춰지고 빠른 시일에 평화가 임하여 더 이상 고귀한 인명이 살상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평화의 구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영적인 전쟁터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깨어있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십자가의 군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에베소서 6:1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의 믿음의 자리를 다시 살피는 기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박종학 목사
재영한인교회연합회 회계
런던함께하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