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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전도는 왜 하는가? – 이수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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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왜 하는가?
왜 기독교인들은 자꾸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간혹 본다. 친지나 친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길거리에 나서서까지 전도한다고 열을 올리는 기독교인들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 종교만 조용히 믿으면 되지 남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신앙에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간에 확연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선 세상사람들의 평범한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거저 세상의 여러가지 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종교를 계통별로 구분해 보면 다르마 계통의 종교(불교,시크교, 자이나교, 힌두교) , 도 계통의 종교(도교, 선불교, 신토, 유교), 이란 계통의 종교(마니교, 마즈다크교, 조로아스터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기독교, 바하이, 유대교, 이슬람), 산흥종교(UFO 신봉 종교, 뉴에이지,  사이언톨로지, 옴진리교 , 컬트, 파륜궁, 증산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독교라는 것은 각종 종교 계통에서 다만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래 종교는 생로병사의 필연적 과정을 겪는 연약한 인간이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인 질문을 해결하고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갈망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런 종교적인 본능이 있으므로,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시대에도 종교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의지는 사도 바울의 아테네 전도 상황에서도 보듯이 알지 못하는 신(unknown god)에게  제사하는 그 곳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적나라하게  발견된다(사도행전 17:22-31).  인생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성행했던 그 시대에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도 제사를 드림으로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을려는 종교적인 본능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사유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더 다양한 종교의 출현으로 현대인은 계속적인 혼란과 갈등속에서 참된 진리를 찾지못해  갈팡 질팡하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땅에서의 선행을 강조하고 있으며, 도대체 이 선의 기준이  무엇인지 조차도 구분하기 힘들고 혼란스럽다. 그저 착한 일을 하면 그냥 무슨 복이라도 받을 것으로 짐작하며, 선한 일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온갖 주변 상황과 개인적 사정으로 그 조차도 실천이 쉽지않아 주변사람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인간들 중에서 그래도 좀 똑똑하다는 선각자가 나타나서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며 , 깨달음의 경지에 든 것처럼 보인다고, 만약 그 인간을 믿고 따라간다면,  훌륭한 가르침은 그로부터 전수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절대자가 아니므로 어차피 인간의 허물과 실수를 함께 공유하는 유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의 가르침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책임질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인간이므로, 인간이 인간을 믿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아니 종교라기 보다는 기독교는 생명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차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창조의 신묘함을 보자.  얼마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어 졌는지… 그 작은 DNA로 인간의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신경기관, 소화기관, 배설기관, 생식기관, 순환기관 등의  각 조직들의 조화로운 연합으로 하나의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생명체로 세상을 살다가 유한한 시간이 지난후 종지부를 찍고 떠나는게 인간이 아닌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인간 존재가 우연이라는 억지 주장은 곰이 타자기 위에 올라가서 타자를 치니  오늘의 신문 하나가  만들어진 것보다 더 어려운 확률인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좋은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나면 그 음식점은 곧 소문이 난다.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은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고도 그 분을 소개하지 않는것은 아마도 극히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어쩌면 하나님을 사실상 만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기쁘고  좋은 것을 왜 숨기겠는가?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때, 날아갈 듯한 그 상쾌함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나의 모든 죄도 용서해주시는 이렇게 귀하고 감사하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세상이 어떻게  알아 줄 수가 없을까?  그 은혜와 사랑을 조금만 맛보기만 해도 당신은 오늘 그냥 그렇게만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