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역사는 곧 교회 역사입니다
대영제국이라 불리는 영국 땅에 한국인들이 뿌리 내리기 시작한 것은 다른 나라 이민역사 보다 초년병에 불과합니다. 이제 걸음마를 떼고 한발자국씩 영국 사회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 나라든 동일하겠지만 이민 역사는 교회 역사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민 초기에는 신앙과 관계없이 모든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이 교회를 통하여 정보를 얻고, 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위로를 받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왔습니다.
지금에야 한국 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대형 슈퍼들이 있고,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시기에 교회에서 주는 어설픈 김치와 하얀 쌀밥, 라면만 봐도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즐비했습니다. 주일에 교회 오는 것은 신앙심 뿐 아니라 그곳에 가야만이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한국인들을 만나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꾸역꾸역 교회로 몰려 들었습니다. 처음 삼겹살을 먹을 때 귀한 깻잎을 반쪽씩 찢어서 나눠 먹으며 그것이 주는 향을 음미하면서 황홀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서툰 영어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아이들 학교 문제, 병원, 집을 얻고,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 하다못해 가구 하나 구하는 것까지도 교회목회자들의 손을 빌려야 만이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목사님의 회고록에 ‘내가 목회하는 건지, 복덕방이나 심부름센터를 하는지 모르겠다’ 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 공부하거나 직장 등 여러 이유로 이 땅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 중에 정착하는 것은 20%가 채 되지 않게 됩니다. 지금은 비자법이 까다로워져서 정착하는 사람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영국에 있는 한인교회 중, 작은 교회일지라도 십년 이상 된 교회들의 통계를 보면 교회를 거쳐 간 유학생이나 이민자 숫자가 작게는 몇 백 명에서 많게는 천명을 웃돌 게 된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스쳐가는 곳이 영국이며, 그 중심에 한인교회가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해 온 것은 이민사회의 역사입니다.
이민 목회는 전문화된 목회여야 합니다. 불특정 다수의 많은 성도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을 살펴서 정밀하게 양육해야 하는 것이 이민 목회의 중점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숫자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 일수 밖에 없게 됩니다. 비록 작은 숫자가 모일지라도 그 교회를 통하여 영향 받은 유학생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됩니다.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가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있지만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이민자들도 있게 됩니다. 그분들의 눈물과 땀 흘림, 가장 밑바닥에서의 고단한 생활은 고스란히 교회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어 성도와 교회가 함께 굴러 가고 있게 됩니다.
주일이면 이 땅에 세워진 한인교회들의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물건을 1펜스라도 싸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을 나누고, 서툰 영어로 인한 실수담, 영국음식을 어떻게 하면 한국식화 하여 조리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나누게 됩니다. 영어가 유창해 지기보다는 한국말, 단어들을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무용담 삼아 하는 이야기는 모든 교회 성도들이 갖는 애환이 아닐 수 없게 됩니다. 한인들의 슬픔과 애환, 기쁨은 교회의 역사가 됩니다. 교회는 한인들의 삶의 깊숙한 자리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기뻐하고, 크고 작은 짐을 함께 나눠지기 위해 몸부림해 왔습니다.
한 목사님 부부는 십년간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사역에 대한 권태기가 왔다고 했습니다. 유학생이 오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거나, 방을 얻기 전에 목사님 댁 거실에서 생활을 해야 하며, 이사문제를 비롯하여 부모역할을 해야 합니다. 목회자도 어려운 형편에 언제든 밥통에는 한 가득 밥과 김치, 된장찌개가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한 밤중에라도 요청을 하면 달려가 차를 태워주고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밤이슬을 맞으며, 행복한 맘으로 돌아서서 불 꺼진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목사님들의 공통된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 십년을 반복하다 보니 너무 지친다 했습니다.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잠시 잠간 머물다 귀국할 때 마음에 패인 깊은 공허함을 매울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영국 땅에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참 많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재영한인교회연합회(KCA)에 가입된 교회 숫자만 2015년 11월 현재 64개 교회가 됩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교회가 많은가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비록 몇 사람 모이지 않을지라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교회가 아니었다면 보호받을 수 없었으며, 신앙적으로 양육 받을 수 없는 힘겹고 눈물겨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교회는 통계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격을 통계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 그 이상입니다. 교회는 종교단체라기보다는 이민 성도들의 생명을 다루는 영적인 병원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해야 하는 영적 군대와도 같은 유기체적 생명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하늘 기관인 것입니다.
재영한인교회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지 어언 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전인 1991년부터 한인목회자협의회로 시작했습니다. 목회자들이 연합하여 모이는 것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있는 한인이민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게 됩니다. 목회자협의회라는 이름은 자칫 목회자 친목도모라는 오인을 받을 수 있기에 2000년 4월에 지금의 이름인 재영한인교회연합회라로 개명하게 됩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교회마다 교단이 다르고, 신학적 배경이 다르고, 목회철학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 땅에 있는 한인성도들, 즉 이민자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효과적으로 양육하기 위한 공동체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한 울타리 된 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 이단이나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가 아닌 이상 모두가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주님의 교회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교회이며, 성도들을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주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하나의 교회입니다. 교회이름이 다르고, 교단이 다르고, 목회자가 다르고, 목회철학이나 신학적 배경이 다를지라도 교회의 본질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반석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리라”(마16:18) 명령하신 교회의 본질과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제자를 만들고 주님의 증인되기 위한 대위임령(마28:19-20)을 준행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영국 땅에 뿌리 내리는 한국 이민의 역사이며, 이민역사는 또한 교회 역사와 맞물려 있는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 공동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