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적 변증 :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의 존재를 논하기 전에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들에게 똑같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그것은 이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며, 늙는 과정을 반드시 겪게되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탄생과 노화, 그리고 사망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라는 존재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유신론적 실존에서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과 계획가운데서는 의미있는 가치를 발견할수 있게되지만, 무신론적 삶에서의 나의 존재는 오늘 피었다가 내일 없어지는 이름없는 들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 입증을 위해서는 양 진영이 예외없이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하여야 한다. 우선 신자들이 복음전도를 위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려면 그 존재를 입증할만한 설득력있는 논리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똑 같은 원리로 무신론자들도 하나님의 존재부정의 논리를 확실히 제시해야만 논리의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상 하나님의 존재의 입증보다 존재부정의 입증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지구상에는 …이 없다” 라는 것을 입증할려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곳을 샅샅이 탐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혀 인적이 닿지않는 아프리카의 밀림지역, 아마존강 유역의 깊숙한 삼림, 심지어는 태평앙의 심해까지, 또한 땅속 깊은 곳까지 세밀히 수색하여 “과연 지구상에는 …이 없구나”하는 완벽한 탐사결과를 제시해야만 한다. 지구상 어디라도 빠진곳이 없이 샅샅이 탐사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감히 쉽게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없다”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히려 존재부정을 증거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구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에서 소련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이 의기양양하게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없다”고 호언했지만, 그는 겨우 대기권을 벗어난 지구상에 근접한 거리에서 큰소리를 쳤을 뿐,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까지 간다해도 온 우주의 하나님을 탐색하려면 실로 어림도 없는 일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존재부정의 명확한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무조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되풀이하는 것은 공허하고 비논리적인 주장밖에 되지않는다. 그것은 마치 고아원에 있는 아이가 “나는 아버지가 없어요”하고 우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제눈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본래부터 아버지가 없는 줄 알고있는 불쌍한 아이들과 같다는 말이다. 태중의 아기가 그 모체를 볼수 없는 것같이 인간이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볼수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과연 없는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성경으로, 신학으로, 자연의 계시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혹은 기적과 신비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소위 과학적 입증의 범위는 육신적인 인간의 오감과 이성을 판단 기준으로 설정하여 가시적인 증거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육신적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3차원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영적인 측면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신 심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듯이(단지 현상적 표현만으로 판단할 뿐이다) 영적차원은 가시권의 한계를 벗어난다. 하기사 육신적인 눈도 초소형 세포, 세균 등을 볼 수없으며, 너무 작은 소리나 너무 큰소리도 우리 귀로는 들을 수 없다.
설득적 논리에 근거하여 우주의 기원에 대해 세가지로 설명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물리적 필연성이고, 또 하나는 우연이고, 나머지 하나는 디자인 혹은 지적 설계이다. 첫번째는 모든 우주의 현상과 원리를 설명할, 알려지지 않은 어떤 체계나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그것이 그냥 그렇게 되어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확률은 애초에 거의 없었다는 이론이다. 반면에, 두번째 설명은 광대한 우주속의 지구가 생명을 위한 조건을 갖추게 된것은 단지 우연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게 된 것 또한 단순한 행운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번째 설명은 앞의 두 설명을 반박하며, 이 우주가 생명체의 생존과 보존을 가능케 할 완벽한 조건을 가질수 있게 만든 설계자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중 어떤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가? 첫번째 설명은 물리학적 우주의 독특성 자체를 전혀 설명하진 못하며, 우연의 결과물이라는 두번째 설명도 이성적 수용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한 정교한 시계가 그냥 하늘에서 떨어졌을 거라며 설명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처사와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적인 생명을 위해 우주를 절묘하게 디자인 해 놓으셨으며 인간 이해의 수준을 초월하여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잘 짜맞춰진 법칙에 의존해 있는 것을 볼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하신 설계에 의해 이루어져 있음을 부인할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혼과 육으로 구성된 짐승과 달라서 영적인 속성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영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신자면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이 있다. 이러한 영적 만남을 신앙밖에서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적인 차원을 무시한 채 육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르고 있다면 끝까지 육적인 삶으로 종결될 수 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이러한 영적인 만남의 기회를 갖게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왜냐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수길 (톨워스 예수능력교회 목사, South London Christian College신학대학 교수,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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