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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올바른 길을 선택하게 하소서 -안병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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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길을 선택하게 하소서

우리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에서 건강검진 결과를 전화로 전해 들었다. 고속버스를 내려 시내버스를 갈아타자 마침 한가한 버스에 뒤쪽으로 멀리 갈 승객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고 바쁘고 짧은 거리를 갈 사람들은 앞쪽으로 타는데……. 전기사 바로 뒤에 빈자리가 하나 있고 중간에 빈 승객들이 서는 자리를 지나 반대편 줄 창문 쪽에 의자 하나를 발견하고 우리는 서로 나누어 아내는 운전기사 뒷자리에 나는 건너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가 조금 출발을 했는데 아내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는 습관처럼 스피커폰으로 받으려다가 주변의 사람들을 인식하고 소리를 죽이고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첫 번째 내 귀에 들리는 음성이 ! 네 병원이세요?”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순간 나는 긴장하기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아내의 음성으로 결과가 아주 심각하다고요?”하고 되묻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내도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어떤 데?”하고 물었지만 상대방의 대답은 전화로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병원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내 머리를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결과가 아주 안 좋다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모르겠다.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때 언뜻 스치는 생각이 어쩌면 화급을 다투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아니 아직 어떤 일인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억누르려고 해도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혹 아내가 하나님 앞으로 부름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삶에 있어서 신앙과 현실에는 어떤 차이

 

나는 어떤 곤란한 일을 접하게 될 때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도피하고 싶어 하는 비겁한 생각을 신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가리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신앙은 아름다운 이름은 가지고 있어도 결코 현실적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허구적인 신앙으로 끝나고 만다. 아마 평소의 습성 같았으면 지금의 이런 상황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천천히 생각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내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도피하고 싶은 현실을 빨리 신앙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내가 가지는 내 생각의 방향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안에서 많은 변론을 스스로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내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자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모습이나 상황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한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고집이 세어서 자기감정에 빠지게 되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여전히 자존심을 내세우고 그 길을 돌이키지 않는데 그 것은 대부분의 경우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의 고집일 뿐이다. 진정한 자존심은 그 결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내 감정에 깊이 몰입이 되거나 빠지지 않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것이 신앙과 현실과의 갭을 줄이고 실제적인 신앙을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득 지금 나에게 이렇게 슬픔의 깊은 감정이 불현 듯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암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른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이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기도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른 선택을 요구하셨다. 내가 너희들 앞에 사망과 생명의 길을……. 축복과 저주의 길을……. 희는 잘 듣고 바른 길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것이 구약성경의 내용이다.

 

이 말씀에 대해 동의하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라고 말을 했다. 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모호한 상황 하에서 이제 이곳을 떠나면 심각한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지하게 되었다. 이 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선택을 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한 것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나의 운명을 위해 기도하기도 작정했다.

 

하나님 저에게 살길을 허락해 주십시오. 바른 선택을 하게 해 주십시오.

 

이 때 나의 기도는 나의 모든 운명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살길이라는 말은 죽을 자를 살려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기를 작정한 사람을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거나 살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 오히려 재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잘 못 선택을 함으로 죽게 되면 그것처럼 애석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살길이란 바로 우리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살길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른 길이란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길을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였고 내 아내를 살려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기도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버스는 어느덧 많은 승객들을 태우고 목적지를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 서울로 발걸음을 향해야 누군가에 의해 빼앗길 줄도 모르는 아내를 지키고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지켜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버스를 타고 함께 어디론 가를 달려가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이킴을 통해서만 회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병기 목사 <런던영광교회, revbkah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