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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예수님처럼 – 박상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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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란 소년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서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고 자랍니다. 그 소년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큰 바위 얼굴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자신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소원해봅니다. 이상은 너무나 유명한 ‘큰 바위 얼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항상 Overlap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처럼 되고자 하는 소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자상한 스승을 만나기를 소원하고, 예수님처럼 겸손한 목사님을 기다리고,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지도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큰 바위 얼굴의 스토리가 막연하게 훌륭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처럼,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도 그렇게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내가 그려 만든 참 좋은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해주신 구절이 있습니다. 그 길은 좋은 이미지나 훌륭한 상(像)을 그려놓고 따라하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곧 ‘만일 나의 뒤를 좇아오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삶은 자기의 본성, 자기만족과 욕심을 추구하는 삶을 거절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바꾸시려고 허락하신 사람과 환경이라는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고, 예수님의 성품과 삶을 자세히 살피며 뒤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대형스피커로 이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영광이 있기 전에 고난이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내 이름을 호명하며 전달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조금 더 쉬운 길은 없느냐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하나님은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라고 하실 분이 아니라고 우기며 계속 자신이 가던 길을 가시겠습니까?

고난주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예수님이 가신 그 걸음을 되새겨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 해주고, 그 길 뒤에는 부활이 있음에 감사하게 합니다. 고난주간을 통해 예수님처럼 되기를 소망한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여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영교회연합회’에서는 매년 해야 할 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고난주간동안 새벽에 함께 모여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3월25일부터 시작된 고난주간 일주일간 어김없이 새벽기도회로 모입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겠노라는 결단과 실천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기회를 만들어 금식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금요일 하루만이라도 금식하며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신앙인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풍성히 부어주시는 은혜의 통로를 가로 막는 일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릴 때에 우산을 쓰고 다닌다면 그 단비는 모두 차단될 것입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비껴 맞는 비를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특별히 현대를 사는 신앙인들이 하지 말아야할 그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미디어 이용 시간을 절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적어도 고난주간만이라도 ‘미디어 금식’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화기(스마트폰), TV, 인터넷 모두를 금식한다면 그 효과는 아주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즉 오락을 위한 영화, 게임, 신문보기 등을 금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을 메일을 체크하는 일 외에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식은 목사인 저에게도 아주 유익합니다. 또한 해마다 교회 성도님들에게 권장하며, 실제로 저희 가정의 자녀들도 매년 동참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일생 속에서 어쩌면 이 한 순간의 몸부림은 너무 작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몸부림이 모여야 내 몸에 살이 되고 근육이 됩니다. 그 작은 몸부림들이 모여서 어느 날 깊이 폐인 흔적이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가지게 됩니다. 십자가! 십자가를 부르면 가슴이 뜁니다. 그러나 뛰는 가슴으로 멈추지 않고, 그 십자가의 영향력 아래 살고 싶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언어가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십자가 때문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얼굴 붉히지 않고, 십자가 때문에 내 안에 기도제목이 생기고 그 기도제목으로 인해 밤새 씨름하는 것을 기뻐하는, 그렇게 감격이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으로 슬그머니 내려놓았던 십자가를 오늘 다시 들쳐 메고 따라가렵니다. 예수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