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죽음이 던지는 물음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구도자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도를 닦아서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도를 닦음은 인격이 수양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직면한 죽음의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종교마다 달랐습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은 세상과의 단절 때문이요, 함께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같은 시공 속에서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자기 권력으로 죽음을 미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죽음이라는 본질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 인생의 결정체 입니다. 인간이 당면한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으로 가는 출입구인 것입니다. 죽음이 두렵다면 그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죽음의 문제는 해결된 것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여 불사조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은 거룩한 것이고, 인생을 평가할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이 소중하기에 그 생명을 가꿔야 하는 것처럼, 죽음도 일생의 여정 중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난 이후로 영원히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태어날 때 살기 위해 태어난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이 땅에 오실 때 죽으러 오셨다 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만이 그 목숨 값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자발적인 깨달음이나 종교성이 아니라 전능자의 힘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 힘에 의지함이 구원받음입니다. 죽음이후의 생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자기 임의대로 생을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죽음은 하나님 앞에 서는 최종 통관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 엄숙해 지는 것이고, 인생을 정리해서 재출해야 할 답안지 같은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하여는 세상에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종교마다 각각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주장은 신화적인 이야기 일 뿐입니다.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직접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으시려면 죄가 있어야 하는데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그 말씀을 귀담아 듣지 못했습니다. 의례히 하시는 종교적 가르침인줄 알았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살아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약속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이는 종교적 신비로움이 아니라 실제 사건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들은 유대지도자들이지만 그것을 공인해 준 집행부는 로마법이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여 죽이라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바로 본디오 빌라도 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할 사람도 빌라도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빌라도는 주님의 부활하신 사실을 로마에 보고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어지는 '빌라도의 보고서' 입니다. 빌라도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보고 한 이후 유대총독에서 폐지되고 위배 생활을 하며 결국에는 정신병자로 처참하게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 보고의 내용은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보고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상고하는 주님의 부활의 사건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죽음을 이기신 역사적 증거입니다. 빌라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백부장은 후에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한 제자들과 성도들은 담대하게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포가 세상을 혼란하게 만든 것입니다. 당시의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숙청했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수십 만 명을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신앙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내어 주면서 까지 부활하심이 사실임을 증거 했습니다. 순교의 피가 온 세상을 물들였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300년이 넘게 주님의 부활을 믿고 증거 하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입니다. 목숨을 걸고 증거 하는 것은 그만큼 진실 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정치인은 자기 목숨을 걸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군대 장관역시 그러했습니다. 300년이 넘도록 수십 만 명의 성도들은 자기 목숨을 걸고까지 주님이 부활하심을 증거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은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목숨을 걸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 신앙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