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스스로 욕심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욕심을 채우려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 생각해보려하는 에스더3장에 욕심이 많은 하만이 등장합니다. 하만의 등장으로 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는지를 우리는 조금 알게 됩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에스더3장을 통하여 드디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각 사람 하만이 갑자기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왕이 그를 모든 대신들 위에 두었으니 아마도 2인자에 가까운 지위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왕이 명령을 내려 하만이 대궐 문을 통과할 때면 모든 사람이 꿇어 절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 유일하게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는 이렇게 행동을 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아각 사람을 아멜렉 사람으로 해석해서 하만은 아멜렉 아각 왕의 후예로 보고, 모르드개는 사울의 후예로 해석을 해서 뿌리 깊은 두 집안 사이에 원한으로 말미암아 모르드개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좀 억지 같다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건은 한 개인이나 집안의 원한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으로 그 의미가 너무 축소되거나 잘못 오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의 전체 내용으로 볼 때에 모르드개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아주 신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보이는 아주 큰 일이 생겼을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습이나,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단할 수 있는 조카를 키운 것이며, 후에 하나님이 그를 하만을 대신하여 나라에 큰 영향력을끼치는 인물로 세우시는 것, 이 사건을 통해 ‘부림절’이라는 이스라엘의 절기가 생긴 것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에 그는 아주 신실한 신앙인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그가 왜 하만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왕이 일정기간동안 하만에게 신적 경배를 요구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르드개는 신앙적 양심상 그에게 그런 신적 경배를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비록 자신에게 예상되는 불이익이 분명하게 보일지라도 모르드개는 그것을 감수하려고 했던 겁니다. 왕의 신복들이 계속해서 모르드개에게 권하지만 모르드개는 그의 신앙적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겁니다. 신앙적 양심을 지킬 때에 우리에게 유익이 온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기쁘게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너무나 큰 불이익이 눈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양심을 지킬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참 신자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하만은 왜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너무나 기분 좋게 왕궁 문을 지나다니던 하만이, 모르드개의 일을 알고 난 후에는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어떻게 이 고약한 모르드개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분노에 대한 묵상(?)은 하면 할수록 더욱 거칠게 타오르는 불길과 같게 됩니다. 그 불길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번지기 마련입니다.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꿇지도 않고 절도 하지 않는 이유가 한 개인의 고집이나 반항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앙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분노의 불길이 전체 유대인에게 번지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신학자들은 유대인의 인구를 약 400만 명까지 추산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만이 유대인의 인구수를 알고 있을 리는 없겠지만, 한 민족을 모두 말살시키려는 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사악한 사람이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악한 본성은 몇 가지 이유로 극대화되기도 합니다. 바로 교만한 마음이 악한 본성을 극대화되게 합니다. 하만은 끊임없이 모든 사람위에 높아지고, 인정받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유익이 돌아올 경우 악한 본성은 극대화 됩니다. 만약에 하만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페르시아왕국에서 어떤 위치에 놓였겠습니까? 아마 그 어떤 사람도 감히 하만과 대항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민족을 말살 시킬 수 있는 그는 극히 무서운 존재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의 재물의 상당부분이 그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므로 그의 부와 지위와 명예는 하늘을 찌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하만의 모습을 통해서 그 어두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악한 본성이 드러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누구든지 그 상황 속에 들어가면 그 악함을 드러낼 수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사단이 우리의 악한 본성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를 짓도록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의 악한 본성을 깨닫게 하고, 벗어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악한 본성을 따르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되, 사단이 그 연약함을 쥐고 흔들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