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 변화가 없는 이유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특권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종교적인(율법적)삶과 죄의식, 자신의 환경, 그리고 열등감 등에서 오는 눌림에서 해방되어야 가능하다. 신앙생활이 습관화되고 변화가 없는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내 안에 없다는 뜻이다. 다스림(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에 ‘예’ 라고 고백 하는 것이다. 내안에 내가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항복이기 때문이다.
근본을 모르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내 인생이 잘되도록 예수님을 빌려서 복 받으려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적지 않은 시간 목회를 하면서 신앙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은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참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섭렵한 것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자라나고 있는 듯 했지만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 형상을 발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별히 매 주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필자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준비된 사람이 누리는 변화
물론 그렇게 된 이유를 행함이 없는 믿음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을 갖고 살기 때문에 라는 핑계를 변명삼아 계속해서 연약함에 길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치관의 충돌과 진리에 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단의 궤계가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방관하는 사이 믿음생활 이라는 내면에 하나님나라 가치관이 아닌 가인 문화를 추구하기 시작 하면서 잘못된 물질관이 행복 추구의 1순위로 등장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둥지를 틀고 앉아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인식 밖의 영역인 “천국”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덥석 아멘 하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듯 한 분위기의 지체에게 변화 거론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약30년 동안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1시간씩 주일설교를 듣는 시간을 환산해 보면 2개월을 약간 웃돈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30년간 2개월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안다는 것은 자가당착 이다. 물론 변화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육신의 만족을 주는 축복관에 대한 옷을 벗기가 쉽지 않다. 변화는 믿음의 그릇이 준비 된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이다. 믿음은 나의 의지나 주관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어지게 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1-12).
회개의 진정성이 변화를 가져준다
다양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소유할 수 있으나 회개의 진정성이 결여 된다면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윤리 도덕적 회개는 익숙해져 있지만 영혼과 삶의 변화를 위한 애통함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회개 없이도 은혜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변화는 없다. 은혜 받으려는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 받으려는 열정이다.
하나님 목적이 아닌 내 욕심대로 사는 것, 감사치 않는 것, 근심 걱정하는 것,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 용서하지 않는 것, 교만한 것, 기도하지 않는 것, 전도하지 않는 것, 하나님 말씀을 싫어하는 것, 순종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하나님 일을 무시하는 것, 책망을 거절하는 것,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결여된 것,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것, 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 주일을 어기는 것,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것 등등 우리의 신앙변화를 위한 회개가 방해받고 있음을 기억하자. 변화의 이유는 주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함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런던청지기교회
이호근 목사 http://stewardu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