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민감하지 못한 크리스찬은 정말 재미없는 신앙생활, 지독하게 어려운 교회 생활이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삼위일체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으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에서 삼위일체론을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속성에 따른 우리들의 생각과 느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꼭 천상에서 망원경으로 우리를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좀 멀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겠지요. 성자 예수님은 실제 우리와 함께 계셨었는데 시간상으로도 2013년의 차이가 나구요. 특히나 십자가 사역을 마치신 이후 하늘로 승천 하셨기에 예수님도 우리 사후에나 뵈올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누구신가요? 현상에 계셨던 주님과 바톤 터치하시어 우리들과 함께 계시기로 약속된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나를 도우시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해도 될까요.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 십니다.(눅 24:49)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는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마치 슈퍼맨들이 되어 사역을 힘들이지 않고 어마어마한 능력의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이후로 성령의 역사는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1. 내가 성령충만하지 못한 이유?
답부터 말씀드리면 사모하지 않아서 입니다. 남녀가 사랑하려면 먼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청년들도 여자청년들도 서로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합니다. 그렇게하여 한 사람이 이성의 관심을 끌지요. 우리는 성령님이 인격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어디서 한번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성령충만을 경험하여도 교회 문을 나서면서 가차없이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면 자연히 소멸됩니다. 성령충만은 교회의 예배와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통해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섬기시는 교회를 통하여 성령충만을 사모하면 언제든지 성령충만을 부어 주십니다. 단 사도행전 2장에 나오듯이 그 시간은 성령님이 주권적으로 결정하십니다. 우리는 사모함과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그 후에 개인의 골방이 활성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만의 기도 장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동차안도 훌륭합니다. 개인침실은 더욱 좋습니다. 이도 저도 없으면 화장실도 OK 입니다.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규칙적인 기도 생활은 여러분을 살리는 큰 힘이 됩니다.
2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성령충만을 받는 과정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기도 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심한 몸동작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모두 정상이고 좋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을 느끼셨으면 다음 과정으로 성령님을 조용히 느끼는 것도 필요합니다. 조용한 중에 극도로 섬세하신 성령님을 느끼신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민감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위대하신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내 몸 안에서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 처럼 내 몸이 성전인 것을 강력하게 깨닫게 되면 내가 이렇게 죄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되는 깊은 회개의 시간이 이루어 집니다. 영국속담에 의인은 모두 감옥에 있고 죄인은 모두 교회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교인들은 모두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죄를 아파하고 짓지 않으려고 몸무림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 교인들이 오늘날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이루어지는 QT는 보석과 같은 시간을 줄 것입니다.
3 성령충만한 이후의 삶
성령충만하면 큰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내 삶과 일터를 송두리체 정복합니다. 승승장구합니다. 힘이 생기고 자신만만하다는 것은 멀리 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멀리 보는 자는 많은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즉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주위에서 힘들어 하는 친구와 동료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그를 조용히 도와 주고 힘내도록 세워 주어야 합니다. 즉 중보기도하며 양육자로 전도자로 돕는 자로 서야 합니다. 전도자라고 해서 사람들을 교회로 끄는 자가 아닙니다. 복음과 그리스도를 나누어 주어 그도 성령충만 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전도자입니다. 물론 과정에서 좋은 교회도 소개해야 하겠지만 영혼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영국은 성령충만하기에 참으로 좋은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돌 아 다녀보고 만나보아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가는 곳도 빤해 단조롭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에 상처도 많습니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면 그로 인해 또 다른 아픔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람은 믿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자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그런 힘을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영국의 모든 한인교회들이 성령충만하여 쓴 뿌리들이 모두 제거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