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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삶의 우선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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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선순위

삶의 우선순위가 그의 인생을 말해 줍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경험한 것은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을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외국에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특권을 누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극히 평범한 생활에도 감동을 받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골 중 시골에서 목회했습니다. 도심에서 벗어나 리(理) 단위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동네에는 모두 여섯 채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중 4가구는 오래 동안 비어 있어서 건물 일부는 쓰러져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 중 한 집을 무료로 얻어서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외양간을 예배당으로 사용하였고, 농가는 서재 겸 사택으로 사용했습니다. 좀 떨어진 곳에 이장님이 살고 계셨는데 하루가 멀다 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잔소리도 하시고 이런 저런 훈계를 하시는 것이 그분의 하루 일과 중 중요한 업무가 되셨습니다.

어느 날 이장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시골에 오기 전까지 어디 살았는가?' '네 여기 오기 전 까지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론 이장님의 훈계가 눈에 띠게 줄어들었습니다. 단지 외국에 살았다는 그 한 마디 말 때문이었습니다. 옆집에 살고 계시던 70대 할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곤 술이 다 깨시기 까지 소싯적 이야기부터 늘어 놓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공무원 생활도 하셨고 김대중 선생님을 도와서 민주화 운동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을 만들어 놓았더니 대통령이 대신 후로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고 노발대발하셨습니다. 절더러 목사님은 외국에도 살았으니까 김대중 대통령한테 연락해서 한번 만나게 해 달라 간청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외국에 살면 대통령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믿었는가 봅니다. 그렇게 부탁을 하신 후 두어 달이 지난 후 술을 드시곤 또 오셔서 지난번 부탁한 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물으셨을 때 그럴 수 없는 형편을 이야기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가면 지인들이 묻곤 합니다. '영국에 오래 살았으니까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 봤느냐? 며 생뚱한 질문을 합니다. 그럴 때 마다 반문하곤 합니다. '한국에 오래 살았으니까 대통령 만나셨겠네요. 어떻게 청와대는 가끔 놀러 가시나요?'

외국에 산다는 것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하지도 않으며 고품격인 삶을 살지도 않습니다. 물론 사진으로 비춰진 모습은 화려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부러움의 자동차인 벤츠, BMW, 아우디, 토요타나 유명 메이커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낭만적인 2층 버스와 명화극장에서나 나오는 2층집에 넓은 정원이 있으며 교과서에서만 봤던 고유적지를 산책삼아 다닐 수 있고, 틈틈이 파란 잔디가 깔려있는 정원에서 영국 사람들과 고급 영어를 사용하여 국제 정세를 심도 있게 나누면서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과연 내 삶이 사진 속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고 품위 있고 영국인들과 고품격 대화를 나누면서 살고 있는 삶일까 생각하게 되면 마음이 저려오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차임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당연 다를 수밖엔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상을 현실로 실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분명 느끼게 됩니다. 이상은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 현실은 다시 이상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영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품었던 그 이상과 현실적 삶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하고, 사회생활도 그러하고, 언어적 측면도 그러하고, 주어진 삶의 전반적인 부분들이 그러합니다. 물론 이를 부정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경험을 나열한 것뿐입니다. 그러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면 무념으로 몸이 움직이게 됩니다.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학교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생각은 침대에서 해가 중천에 뜨도록 빈둥거리고 있지만 몸은 벌써 사회라는 공간에 들어와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게 됩니다.  

이상과 현실에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되면 삶의 우선순위를 망각하게 됩니다. 건강을 잃게 되면 먹고 싶은 음식도 없어지고 생각나는 음식도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인가 먹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한국에서 무슨 음식이 맛있었는지, 또 무엇이 먹고 싶었었는지 무념일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그 다음은 무엇을 하고, 또 그 다음은……. 그래서 어제 보단 더 효과적으로, 더 밝음으로, 더 희망찬 모습으로 삶을 산다는 것이 꿈만 같아집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을 때 그 다음날은 마음이 들떠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을 치우고 쓸고 닦는 그 신선한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처음 노트를 구입하였을 때 정성스럽게 작은 글씨로 빼곡히 써내려가다 절반도 쓰지 않아 성의 없는 글들을 휘갈겨 쓰다 끝내 채우지 못한 노트들이 한 가방이나 됩니다. 처음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 먼지 하나 묻지 않도록, 문을 열기 전엔 반드시 자동차 한 바퀴를 돌아야 운전했던 그 생동감 있었던 마음도 이젠 숨을 죽이고 깊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모르면서 다 아는 척 해야 하고,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척해야 하고, 성공하지 않았으면 성공한 척하다 보니 삶의 탱탱한 숨결을 상실하게 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망각한 시대에 내 자신이 너무도 깊숙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허울만 좋을 뿐이니 실속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 앞에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언젠가 잘할 수 있겠지, 언젠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겠지, 언젠가 영국인들과 막힘없이 인생을 논할 수 있겠지, 언젠간 이십년 가까운 자동차를 버리고 MOT 통과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신형차를 탈 수 있겠지, 언젠가 전기세를 걱정하지 않고 추운 날 전기장판을 마음 놓고 틀고 잘 수 있겠지. 그러면서 현실은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기에 마음이 굳어져 가고 활짝 웃었던 미소도 사라지고 작은 소리에도 분노하여 노여움을 타게 되는 현실적인 삶 앞에 통곡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몸과 마음이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감사가 우선순위가 아닐까요.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 순수한 마음, 가족에 대한 감사,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영국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닐까요. 큰일을 하고 무엇인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 달리기 위함 보다 본질적인 감사에 우선순위를 두고 현실에 자족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위대한 삶을 만들어 가리라 믿어집니다. 우리 교회에 노신사가 계십니다. 어느 날 대화하는데 어린 목사에게 진솔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아침에 눈을 뜨면 과거에 없었던 것을 최근엔 합니다. 그것은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는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감사 없는 삶이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성공한 듯, 부지런히 살아온 것 같지만 그 집은 무너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요. 감사를 말할 수 있고, 비록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현실에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재영한인교회연합회
문화선교국 박심원 목사 http://jv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