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텃밭
"내 영혼의 빈터" 라는 수필로 몇 해 전, 한국시에서 주최하는 '한국 수필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익산의 도심에서 자투리땅을 일구어 배추를 가꾸는 할아버지 이야기와 충북 단양에 밀짚모자 속에 가려진 밭에 얽힌 이야기가 그 주제였습니다. 자투리땅을 일구기 위해 할아버지는 내 인생의 작은 키보다 높이 연탄재를 쌓아서 그 위해 흙을 덮어 평평한 밭을 일구셨습니다. 배추 몇 포기 심기 위해서 노력한 것에 비하면 헛된 일일 수 있지만 땀 흘려 작은 밭이라도 일군다는 그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충복 단양에는 산악지대여서 평지의 밭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농부가 손바닥 보다 조금 큰 밭을 만들기 위해 축대를 몇 미터까지 쌓아 올린 것도 보았습니다. 한번은 농부가 일을 쉬면서 자신이 일군 밭을 셈하였습니다. 그렇게 일군 밭이 백 개였는데 그날은 99개의 밭 밖에 없었습니다. 몇 번을 헤아려 봤지만 한 개의 밭이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농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자신이 벗어 놓은 밀짚모자 속에 밭 한 떼기가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인들은 정원을 꽃과 나무로 가꿉니다. 예수마을 정원은 구석구석을 일구어 꽃을 심는 대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심었습니다. 밭을 일구기 위한 도구를 사들이는 일과 모든 비용을 합하면 채소를 사 먹는 것이 훨씬 싸고 수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땀 흘려 밭을 일구는 것은 더 값진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단양의 농부의 밭 보다 몇 갑절 큰 밭을 일구어 자잘한 자갈들을 골라내고 오래도록 뿌리 내린 잡초들의 뿌리를 뽑아내고 토양에 좋은 거름을 섞어서 채소가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주면서 느끼는 것은 세상의 경제학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밭을 일구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가장 좋은 밭은 옥토라 하셨습니다. 옥토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다한 땀 흘림의 결과에서 온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성장 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을 심기 위해서는 돌을 골라내고 딱딱한 땅을 일구어 부드럽게 해야 하고, 그곳에 기름진 거름을 썩어 주어야 비로소 옥토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게 되는 것이요, 그렇게 일구어진 밭에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씨앗입니다. 그 씨앗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는 거룩한 열매들을 품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씨앗을 키워내는 마음 밭인 것입니다. 세속의 잡초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어 진다면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기에 성장에 제한을 받게 됩니다. 딱딱한 마음 밭에 씨앗이 심겨질 수 없으며, 돌들을 골라내지 않으면 씨앗은 뿌리를 내릴 수 없게 됩니다.
예수마을의 텃밭을 일구는 것은 목사의 마음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심전경작' 이란 설교를 외친 적이 있습니다. 목사의 마음은 언제나 잡초로 가득하게 됩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그 잡초는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유혹과 재물의 욕심, 욕망의 뿌리는 말씀의 뿌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을 뿌리 뽑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언제나 성장이 멈춘 상태로 있게 됩니다. 예수마을의 텃밭을 일구기 위해 육체의 땀 흘림을 통하여 목사의 마음 밭을 일구고, 성도들의 마음 밭이 옥토로 바뀌기를 간절한 소망해 봅니다.
내 영혼의 텃밭은 밭이 아니라 목사의 마음입니다. 비록 어설프게 경작되는 것이지만 거룩한 땀 흘림 속에서 거룩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목사의 마음 뿐 아니라 예수마을 모든 성도들의 마음 밭입니다. 거룩한 땀 흘림을 통하여 거룩한 거둠의 소망을 기대합니다.
런던 예수마을 커뮤니티 교회
박심원 목사 http://jv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