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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 박상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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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되게 하라’ 이 말은 특전사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 일을 이룰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단순한 구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큼 힘을 주는 구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난 주일에 들은 설교 말씀이 지금도 내 머리에 남아 큰소리로 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어제 보았던 드라마 속의 짧은 대사가, 또는 우연히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그 테이블의 여운이 진한 울림이 되어 기억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독자님들은 깨달음이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그 강한 도전을 실천하려면 처리해야할 장애물이 커보이지는 않습니까? 그 깨달음의 음성에 순종하고 싶지만 그 음성에 순종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더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이루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6년 동안 합당한(?) 이유로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는 나라의 조서가 있었고,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늘 칼을 갈고 있었으며, 약 70년 만에 돌아온 예루살렘이었기에 이주해온 자들로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야 하는 분주함이 그 합당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은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16년의 긴 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성전을 건축하라’는 메시지가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들려왔습니다. 다른 일보다도 우선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강한 메시지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위에서 언급된 성전 건축을 미루어 왔던 합당한(?) 이유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성전을 건축하라’고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요동했고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재건의 말씀을 들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그러한 백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약 3주 만에 백성들은 성전재건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결정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이 학개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거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내게 전해준 메시지라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그 상황을 통해 내게 말씀하셨다는 확신만으로, 16년 동안 합당하게 미뤄왔던 성전재건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그들이 일어섰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깨우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으로 반응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후에 우리가 하나님께 손들고 순종하겠노라고 일어서면 하나님은 즉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이 실제로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아십니까? 성전 건축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전 건축 자재들입니다. 학개는 백성들에게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정도 자재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자 하나님도 놀랍도록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다리오 왕에게 성전 건축에 관하여 문의하고, 그 문의를 받은 다리오 왕이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내게 합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신속하게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물질을 공급하라고 조서를 내리고, 그 결과 4년이 못되어 성전재건이 완성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이 현실로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은 또한 백성들의 마음을 흥분시킴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흥분시키다’라는 말은 ‘잠을 깨우다, 자극하다, 감동시키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해서 그 일이 힘들지 않거나, 어렵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감동,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1년을 하루같이 여기며 일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마음의 감동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의 구호는 ‘안 되면 되게 하라’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는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만 그 일을 하라고 채찍질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겠노라고 우리가 두 손을 들면, 그때부터 분주하신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