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태워 세상을 밝혀라
교회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선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흡수할 때 교회는 생명력을 잃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 말은 설명을 해야 만이 오해가 없을 표현이기도 합니다. 흡수한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도 표현되어지고 나쁜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흡수한다는 것은 세상의 좋지 않은 것을 교회 안으로 수용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세상을 흡수하는 것은 교회의 거룩한 정화 능력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할 때 세상의 사기꾼들은 교회에 다 모여 있다는 농담을 합니다. 그들의 말이 전혀 틀리는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이슬만 먹고 사는 천상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버림받고 실패한 사람들이 교회의 중추적 구성원입니다. 물론 실패한자들만이 교회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병든 사람만이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병이 들기 전에 병원을 다니는 것처럼, 세상에서 필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구원이라는 큰 비전에 흡수되어 교회 구성원이 됩니다. 교회의 거룩한 흡수력은 어떠한 실패자도, 어떠한 악한 자 일지라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 문화가 타락했기에 교회가 타락하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이 악하다 하여 교회가 힘을 잃지 않습니다.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면 세상이 악하면 악할수록 교회공동체는 더 거룩해 졌으며, 세상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교회는 거룩한 빛을 발했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것은 위협이나 역경이 아닌 오히려 안주할 때 이며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세상이 앞장서서 할 때입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여 품고 책임을 져야 했지만 현대는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사회봉사를 세상이 더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는 교회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 놓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도덕과 윤리 말할 때 교회는 힘을 잃게 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보다 비교인들이 오히려 더 도덕적이고, 더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공감대가 있는 시대라면 교회는 당연 힘을 잃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흡수하여 세상을 정화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하여 새롭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이요, 거듭났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증표인 것입니다. 유대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예수께 던진 질문은 오늘 시대에도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원, 거듭남은 세상적인 기준으로서의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는 차원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은 최상의 순위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업적을 남긴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으십니다. 사회적 업적으로는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을지라도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성군입니다. 최고의 전술가, 최고의 문학가, 최고의 예배 자, 최고의 기도 자, 최고의 참모진을 가진 겸손한 왕이었습니다. 그 주변 인물의 위대함이 아니라 다윗의 위대함이 주변 인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다윗 왕국의 시작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거나, 세상이 버린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다윗의 일생 중에 넘어야 할 산은 초대왕인 사울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했던 장소가 아둘람 동굴입니다. 그 동굴로 오기까지는 다윗에게 치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군사 3천명을 풀어서 다윗의 목을 가져오라 명령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다윗이 숨을 곳이라곤 없었습니다. 다윗은 국경을 넘어 적진으로 숨어 들게 됩니다. 그곳이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 땅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왔다는 이이야기를 들은 블레셋 지경의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을 부릅니다. 불레셋에게서 다윗은 골리앗 장수를 죽인 원수입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에 따라서 처형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에게 소환된다는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미친 사람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의 미친 행동으로 죽음을 모면하였지만 블레셋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삼상21:12-14)
그렇게 쫓겨나서 숨은 곳이 아둘람 동굴입니다. 다윗이 동굴에 숨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400명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윗의 신복이 되겠다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로 나아온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22:1-2) 다윗의 위대한 왕국을 건설하는 재원은 바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그늘이 교회로 흡수되는 현상입니다. 교회의 흡수력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정화의 능력이 있게 됩니다. 다윗에게로 나온 400명의 낙오된 자들이 다윗왕국을 세우는 일등공신이 된 것처럼 교회에 흡수된 이후로 생각도 마음도, 그들의 영혼이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인간의 도덕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는 세상을 향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흡수하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회정화 운동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이 땅에 세워진 하늘 기관입니다. 사람이 새롭게 되어야 만이 세상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세우진 종교단체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보면 세상에 대해 함구해야 합니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을 흡수하여 그들이 변화되고, 그 변화된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세상을 흡수하는 것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흡수한다는 것은 세상의 제도가 아니라 세상에 찌든 사람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인종을 차별하지 않고, 남녀노소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빈부나 사회적 명예나 권력도 차별하지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을 흡수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새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둠은 물러가게 되는 것이고, 무질서했던 세상에 질서가 잡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어둠의 세상으로 들어가 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빛이 필요한 곳은 어둠의 세상입니다. 작은 불빛이라 할지라도 어둠속에서는 요긴하게 사용되어집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빛은 자기 자신을 태워야 만이 가능합니다. 스스로 빛을 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태우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나를 태우지 않고는 결코 빛을 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는 것은 교회의 구성원이 성도가 욕을 먹는 것입니다. 욕을 먹는 이유는 자신을 태워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때 손해를 봐야 합니다. 조금 일찍 출근해야 하고, 조금 늦게 퇴근해야 합니다. 먼저 움직여야 하고, 더 많은 인내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할 말 다 하고, 자기 누릴 것 다 누린다면 결코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태워 빛을 내는 것은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의무는 다하되 권리를 누리지 않는 삶이기도 합니다. 어둠의 세상에서 빛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는 교회의 거룩함에 흡수되지 않았다는 증거요, 교회를 통하여 새롭게 거듭난 경험이 없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박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