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 회복을 위한 몸부림
작은 건물은 설계도 없이도 웬만한 건축 상식만으로도 쉽게 세울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도구의 이름과 용도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망치하나 만으로 개집 같은 것을 지을 수 있었으며, 그것보다 더 큰 건축물도 아무런 설계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단순한 도구의 활용도를 알지 못합니다. 영국에서는 북한에서 이주해온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직업은 대부분이 건축 분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집을 수리하고 고치는 문제는 특별하게 배우지 않을지라도 웬만한 상식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그만큼 그들의 삶이 고단했음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선진문명에서 자란 사람들은 못하나 박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을 통과한 사람은 그 이상의 것도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초가집 시절에 우리 조상들은 설계도 없이 뚝딱 뚝딱 집한 채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 관한 영상을 보면 설계도 없이도 몇 시간이면 거처할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문명 세계에서는 단순하게 비를 피하고,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는 것만이 건물의 용도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 숨 쉬고 아름다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복합적인 곳이기에 완벽한 설계도 없이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허가 자체를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건물의 설계도는 그 건물을 지어야 하는 목적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본질이라 합니다. 건물마다 본질이 있는 것처럼 개인과 단체에는 반드시 본질적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본질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건물의 설계도가 있어야 그 건물이 바르게 지어지고 있음을 측정할 수 있으며, 잘못된 부분은 수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 성당이 있습니다. 1882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2035년이 완공 예정입니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천재 건축가로 불리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i Cornet, 1852 – 1926)입니다. 설계자는 이미 고인이 되었을지라도 그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는 것은 설계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물이 처음 의도한 바와 같이 바르게 지어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완벽한 설계도가 없었다면 처음 설계자가 사라진다면 건축물도 중단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건물인 숭례문은 오래전에 한 방화범에 의해서 화마에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은 처음처럼 복원된 상태입니다. 원래 건물은 불에 타 재가 되었을지라도 처음 모습과 같은 형태의 건물을 재 건립할 수 있었던 것도 건물의 설계도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인 설계도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신약 시대 부터가 아닙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교회는 존재했습니다. 물론 교회라는 명칭은 예수님의 성육신 하신 후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을 설계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한 방법 외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그 이름이 다르게 불려 졌습니다. 그 용도가 바로 교회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이 가지는 종교성을 충족하기 위해 세워진 종교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신이 세우신 하늘기관인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들은 이 말을 수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이미지가 타락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타락한다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교회가 타락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흐려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것에는 종교적 차원의 의식으로 검증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사람들은 눈으로 목도 할 수 있었습니다. 불이 내려오고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영광의 위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에서 예배 할 때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임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종교적 의식으로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나타내는 방법은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너희 착한 행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을 위해서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을 합니다. 개혁은 뜯어 고치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질로 가기 위한 점검입니다. 비록 사람들 눈에는 교회가 평범한 종교단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지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눈이 교회에 집중해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책임져야 하며 어두운 곳에 빛이 되기 위해서, 썩어져 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기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예배당 건물의 회복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에 빛으로서, 소금으로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나타내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교회의 본질인 설계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설계도를 완성해 가는 믿음의 행위요, 교회의 존재 목적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