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신 반석위에 세우시려는 교회는 특별한 교회가 아닌 보편적 교회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서 시작되는 것은 특별한 교회의 출현입니다. 목회자는 특별한 성도를 원하고, 성도들은 특별한 목회자를 원하게 됩니다. 보편적 성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성도를 교회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타락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현대 교회는 특별한 교회만 성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편적 교회의 쇄약 해 질대로 쇄약 해 져서 작은 바람에도 견디기 힘든 것이 교회의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한 교회는 완벽한 구조와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합니다. 과거에는 불편함을 극복하는 것이 성도의 자질이요, 신앙인의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가장 화려한 교회 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세상 그 어느 곳 보다도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방송국 이상을 방불케 하는 음향 시스템으로 울려 퍼지는 찬양은 성도들로 하여금 열광케 합니다. 특별한 교회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교회가 출현함으로 보편적 교회가 쇄락했음을 스스로 자각 하자는 것에 있습니다. 그 쇄락은 목회자 자신도 특별한 교회를 세우리라는 것을 꿈꾸고 있으며, 성도 또한 교회를 다닐 바에는 편리하고 특별한 교회의 교적을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모습과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무언가 다릅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특별한 교회란 어느 교회를 지목함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보편적 교회를 지향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골 마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보편적 교회의 특성입니다. 특별할 교회만이 성장한다는 것은 그 만큼 교회가 쇄락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알아가는 것,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마다 각각 달라야 합니다. 교회마다 특색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서로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한 영적 질서와 의식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는 대형교회를 존경하고, 또한 대형교회는 시골의 작은 교회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형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교회의 특별함을 넘어서서 작은 교회들의 희생적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유행을 타게 되면 보편적 교회의 특성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유행이란 숫자적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모방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모방하고, 찬양을 모방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흥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잠시 효과가 있을 수 있다지만 결국은 보편적 교회는 고유한 영적인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특성은 목회자에게 주어진 영적인 달란트입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면 인터넷을 뒤지기 전에, 서점으로 달려가 교제를 구하기 전에, 어느 교회가 성경공부를 통하여 부흥을 했는지 정보를 구하기 전에 먼저 골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골방에서 주어진 땀 흘림 만이 교회의 특성을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특별한 교회는 반드시 골방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 교회의 프로그램을 모방하여 배울 수는 있지만 본질이 되는 골방을 배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교회의 목회자라면 얼마든지 성경공부 교제를 만들 수 있도록 신학교육을 통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대중화 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주어진 목양의 현장에서 주님의 양떼를 양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음식과 같습니다. 목회자가 골방에서 땀 흘리고, 눈물 흘려 무릎으로 나온 음식만이 교회의 보편성을 살려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뛰어 넘어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교제를 들여온다는 것은 편리할 수 있고, 세련될 수는 있지만 교회를 살려 낼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마치 한 교제를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공부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신앙 인격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살려내는 데는 역부족일 때가 더 많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교회는 이미 쇄락의 능선을 넘어 섰습니다. 한국교회역시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보편적인 교회는 쇄락의 언덕을 향해 부지런히 오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국교회마다 성경공부 안내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바로 알파코스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교회가 깨어 있기 위해서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인기 있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교회는 광야시대의 성막과 같은 위치입니다. 교회가 깨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해 계시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 임재 해 있다는 것은 목회자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침체되는 교회를 구해내기 위해서 각종 세미나를 쫓아다닌다면 그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라 해도 마음이 찢어질지라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결코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것은 침체된 교회를 살려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각종 프로그램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시작한 특별한 교회를 모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편적 교회의 특성은 목회자에게 주는 골방에서부터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세미나 정보가 아니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책 한권에서 시작되는 성경공부와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들이 창출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는 한 하나님을 알기 위한 공간이며, 그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며, 그렇게 배운 하나님을 삶에서 동행하기 위해서 경건의 훈련을 하는 곳입니다. 숫자가 작은 대로 교회는 깨어 있어야 하며, 크면 큰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편적 교회의 실현입니다. 서로 모방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살려내는 것은 각종 특별 세미나가 아니라 골방에서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려는 거룩한 땀 흘림에서 맺혀지는 열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