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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교회연합의 비밀 – 박심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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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교단이 다르고 이름이 다를 뿐이지 하나의 교회입니다.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교회들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각자  교회에 맡겨진 특성을 살려 협력하여 공동의 선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하늘 기관입니다. 교회가 병들었다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병들었다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교회를 사랑해서 병들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단지 돌만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 여긴다면 교회가 병들었다며 막연하게 불특정 다수인 교회를 항하여 돌을 던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 밖에서 교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안에서 대책 없이 비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 주님의 몸임을 인정한다면 무책임하게 교회를 비판하지는 않게 됩니다. 교회가 병들었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이나 내 자신이 먼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주님의 몸임을 인정하는 성도의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와 교회간의 힘겨루기를 하며, 성도간의 경쟁을 하게 합니다. 교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하는 방식이 다르고, 찬양하는 곡이 다르고, 섬김의 방법과 예배의 분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추구함의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본질은 한가지입니다. 본질은 비 본질을 통하여 본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을 사면 아이스크림의 본질만 살 수 없습니다. 본질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본질인 포장을 함께 사야 합니다. 세상은 때론 본질 보다는 비 본질을 만드는 일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본질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비본질인 포장이 잘못되면 사람들로 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본질은 하나님 나라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비본질의 섬김과 종교적 형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마다 섬김과 종교적 형식이 다른 것은 본질의 다름이 아닌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인 비본질의 차이일 뿐입니다. 물론 이는 이단교회가 아닌 정상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비좁은 신앙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천국이라는 결과주의만 사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씀을 처음 전해들은 사람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곳입니다. 사람의 상상 속에나 존재했던 형이상적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긴 하되 인간의 생각 속에만 존재했던 꿈의 파라다이스였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나라가 현실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 가르친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등장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전도를 받으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요한과는 별개의 꿈을 꾸게 했습니다. 요한이 전파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율법이 현실적으로 완성이 되는 도덕적이면 윤리적인 나라로 이해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본질을 세례 요한이 전한 본질이 없는 비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교회, 윤리적인 교회, 공공질서와 사회적 안영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일이지만 이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본질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요, 그분을 닮는 것입니다. 교회연합이란 비본질적인 것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본질이 무너진 교회는 연합의 금자탑을 세웠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금자탑은 파장을 일으키며 무너진다는 것이 역사적 가르침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의 일곱 교회는 숫자적인 교회 의미가 아니라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포함하고 교회의 표본입니다. 교회연합 운동은 비본질적인 사역의 모방이나 일치 운동이 결코 아니어야 합니다. 일곱 교회는 각각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역적인 특성을 살려서 궁극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부흥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에 모방적 부흥을 꽤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모은 교회가 하는 것을 모방하여 행하게 됩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함께 연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연합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합하기 때문에 다툼이 있게 되는 것이며 더 좋은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사역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골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골방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골방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인기 있는 성경공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심리치료와 음악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필요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골방으로 들어가 골방에서 깨달아진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 주어진 핵심 사역인 것입니다. 그것이 있을 때 교회는 연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골방이 무너진 연합은 형식화 될 뿐입니다. 골방에서 세워진 하나님 나라, 그것이 교회를 세우고,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다른 교회를 존중하여 서로 연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