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연재기사

교회쇼핑시대 – 박심원 목사 –

교회쇼핑시대, 그 말만으로 가슴이 저려옵니다.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 표출의 방법이 교회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교회쇼핑이란 말에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말이 되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로 부득이 하게 교회를 옮겨야 하거나 새로운 교회를 결정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편리성과 자기 기호에 맞는 교회를 찾는 것이 교회쇼핑인 것입니다. 교회는 분명 하나님이 세우신 하늘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보좌에서 내려 오셔서 직접 교회를 세우지는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택한 사람에 의해서 세우게 하셨고, 당신의 신실하신 종들에 의해서 운영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 종교적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세우신 하늘 기관으로서의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를 쇼핑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의 숫자가 많다는 의미도 됩니다. 영국에는 많은 동족들이 뿌리내리며 거대한 다문화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많은 민족 중에 한국인들은 소수 민족에 불과합니다. 영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몇 만 명에 불과합니다. 단순한 숫자로는 큰 집단이라 할 수 있지만 전체 민족 중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점 몇 개를 찍어 놓은 듯한 소수이지만 영국이라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파를 초월한 교회 숫자입니다. 영국을 터전삼고 사는 그 어느 민족이 자기 민족을 위해서 백여 개의 교회를 세운 민족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몇 가정만 있어도 하나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만큼 신앙심이 깊다 할 수 있지만 교회에 대한 희소성이 상실되는 아픔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기 기호에 맞는 교회를 선택하는 교회 미식가가 되는 것입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경험한 어르신들은 쇼핑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쇼핑이란 단어가 보편적 생활용어가 된 것은 그렇게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물물교환 형태의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본능적인 물품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현대와 같이 기호를 맞추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현대를 일컬어 코넬대학의 미래학자인 ‘존 네이스비트’ (John Naisbitt)는 하이테크(hightech)의 첨단기술을 넘어서 하이터치(hight touch)인 고감성 시대라 했습니다. 이제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과거에 기술 제일을 앞세웠던 기업들은 경영진들이 바뀌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기술을 앞세웠던 대 기업들이 무너진다는 것은 인간은 이제 기술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역사적 현실입니다.

이러한 문화에 걸맞게 교회도 변화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성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전에 임하시는 ‘쉐키나’(Shekhinah)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는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는 목적입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 고난, 더 큰 세상을 향한 비전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하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거룩한 뜻만으로는 교회가 지탱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십자가를 세워놓음만으로 교회가 세워지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기술하나만으로 기업의 승부를 걸었던 시대와 같아졌습니다. 성도들의 고감성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기 보다는 종교마케팅에 먼저 눈을 뜨게 되는 경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교회의 타락입니다. 주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화려한 건물, 인간의 고감성을 감동시킬 만한 시설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불편해야 합니다. 이 말은 이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전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초점을 맞추는 것이란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주님의 거룩하신 뜻에 의해 운영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은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것에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세상문화입니다. 기술시대를 넘어서 고감성시대라 할지라도 그것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환경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드려진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진 생명의 속전입니다. 그 귀한 헌금을 인간의 고감성을 위한 건물 유지나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대부분이 사용되어진다면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보다는 종교 클럽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성도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택하기 보다는 자기 기호에 맞추기 위해 교회쇼핑을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시고 세우신 하늘 기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사람에 의해서 운영되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 같은 종교기관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하심이 있는 거룩한 보좌입니다. 교회를 선택하는 것은 자기취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게 되면 교회가 좀 불편해도, 내 적성에는 맞지 않을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주께서 반드시 물으시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주님의 피로써 세운 교회를 책임진 적이 있는가?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순교의 각오로 헌신한 적이 있는가?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어렵다, 불편하다,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 교회를 찾아 해매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지금 섬기는 그 자리, 그 교회는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셔서 책임져야 할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