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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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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공유

 

 

인간은 하나님과 종교적 관계로 존재함이 아니라 거룩한 가족으로서 지음 받은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현대적 표현으로는 거룩한 공유가 있게 하신 것입니다. 종교적 관계란 신과 인간과의 보편적 종교관입니다. 일반 종교에서 절대적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을 만든 이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신 이미지에 보이는 형상을 입혀서 만들어 낸 것이 일반 종교의 신관이며 신의 형상입니다. 인간위에 신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인간의 약점을 보안하기 위해 신을 등장시킨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신은 인간의 보조적 역할인 셈입니다.

 

 

인간은 완벽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지음 받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큼 완벽한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벽하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완벽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생명체 중에서 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신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불안전 하더라도 주어진 본능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신을 찾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불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인간의 전 세대에 걸쳐 신을 만들어 왔습니다. 인간이 신을 마들고 그 신에 의해 지배 받는 것이 인간역사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이며 인간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신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일반 종교의 이해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신을 어떻게 믿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관인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그 신의 노예가 되는 어리석은 삶을 인간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했던 수많은 신들이 그렇게 인간에 의해 탄생했으며 또한 소리 없이 사라져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인간은 신을 만들어야 할까요? 인간 안에 신을 찾을 수 있는 영적인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그 기능은 잘못된 신관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3)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종교적인 관계로 지은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을 창조하실 때는 각각의 형상으로 만들었지만 인간만큼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모델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거룩한 교류가 있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뿐 아니라 서로가 교통하며, 만물과 교통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꽃을 삶의 무대로 사는 벌은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본능적인 먹이 수단을 수행하기 위해 꽃을 찾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꽃을 보고 노래합니다. 노래뿐 아니라 위로 받게 됩니다. 하늘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아름다운 경관 앞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서로 교류하며 살도록 지음 받은 증거인 것입니다. 교류는 본능적인 차원을 넘어선 거룩한 공유여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복잡하지만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이를 대 계명 (The Great Commandment) 이라 합니다. 많은 계명이 있지만 계명을 대표할 만한 것은 모든 계명을 지키는 기본적인 자질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대 계명의 핵심인 것입니다. (10:27)

 

 

사랑하는 것이란 거룩한 공유로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서로 나누기 위해 공유라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면 알맹이만 살 수 없습니다. 반드시 포장에 쌓인 물건을 사야 합니다. 알맹이인 본질만을 살수는 없습니다. 만약 본질만 판매한다면 상품 가치는 떨어질 것입니다. 구입해 오면서 화려하게 포장한 것은 뜯어서 버리게 됩니다. 사랑이 본질이라면 그 사랑을 전하는 과정인 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섬김으로, 도움으로, 울타리가 되어 줌으로 사랑을 전하고 나눌 수 있는 거룩한 공유인 것입니다.

 

 

큰 사랑 보다는 작은 사람을 나눌 수 있어야 결국은 그 사랑은 자라서 큰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예원 자매가 스코틀랜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찍은 사진들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습니다. 보내준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큰 것이 아닐지라도 거룩한 공유입니다. 공유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매체요 그 사랑이 담긴 포장인 거룩한 나눔입니다.

 

 

공동체는 종교적 집단의 차원을 넘어선 가족의 차원입니다. 혈통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영적인 본질로서 같은 형제요 자매인 가족입니다. 교회의 의식 중에 성찬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성찬은 인간이 만든 종교적 굴레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직접 알려 주신 거룩한 법칙입니다. 사랑을 공유하며 가족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주님 자신의 몸을 먹으라 하셨고, 자신의 피를 마시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동체요 서로에게 거룩한 울타리가 되는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나눔으로 그 안에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며 공유하는 것입니다. 자매가 본 하늘,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까지 연결되는 거룩한 통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직장을 구해서 혈혈단신으로 날라와 생활하는 모습에 눈물겨운 박수를 보냅니다. 울타리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 주는 가족과 같은 회사가 있지만 낯선 이방의 나라에서 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는 자매의 집입니다.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는 자매의 가족입니다. 우리의 보호자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몫은 각자 받은 은혜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서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안아 주고 다독거려 주는 것이며,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담아 보내는 것입니다. 삶 전체를 공유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가 있는지를 작은 나눔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이며 또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계명인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것처럼, 지극히 작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자가 큰 것을 나눌 수 있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공유해 주신 자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영국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고 외로울 수 있지만 이곳에서 자매의 거룩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더 큰 세상으로 가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적 훈련 이상으로 중요한 영적인 훈련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비전을 발견하고 그 비전을 향해 젊음을 투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인생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