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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개혁주의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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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론

교회의 본질은 거룩함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위엄이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적인 기준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존귀함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법의 근간을 만들어 갈 때 교회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법을 표준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인데 세상이 느껴지는 실제의 교회의 모습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비춰진 교회의 모습뿐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춰집니다. 그래서 세상의 법으로 교회가 지배받고 있으며, 하나님의 법 대신에 세상의 윤리와 도덕적인 기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교회를 향해 돌을 던지며 교회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들어집니다.

베드로는 우는 사자같이 마귀가 성도들을 삼킬 것에 대해 주의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벧전5:8)이 편지를 받아본 소아시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 불리는 성도들은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는 사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자는 자연에서 생활하는 사자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사자도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위협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인과 교회 집단의 종교적이기에 대한 핍박이 아니라 이는 정치적이며 국가적으로 자행되는 핍박이었습니다. 기독인들은 집단으로 처형하고 백성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굶긴 사자를 경기장에 푸는 거였습니다. 그 경기장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방비 상태로 옥에서 사슬에 채인 채 있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는 그리스도인들을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비명소리, 피비린내가 온 경기장을 뒤 덮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로마의 유명한 콜로세움에서 행해졌습니다.

교회가 핍박 받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성도 개인의 삶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칭찬 받음으로 외적인 성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행2:47) 국가적으로는 교회 말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것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개인은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의 교회 현상과 반대라 여겨집니다.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독교의 진리위에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영국은 기독교 국가입니다. 왕으로 부름 받을 때 교회에서 가장 엄숙하게 하나님의 권위로 왕관을 씌워주게 됨으로 왕 명을 받게 됩니다. 적어도 국가적으로는 교회가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핍박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도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차원이 아니 교회 구성원들의 삶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현대에 교회가 핍박 받는 것과 과거 초대교회에 교회가 핍박 받는 것을 일치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핍박 받는 것을 마귀의 공작이라 여겨져서 성도가 무장을 하는 것이지만 현대 교회가 핍박을 받는 것은 교회가 윤리적, 도덕적인 가치 이하로 타락한 것이기에 회계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생각하는 수준이 일반 클럽보다 못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세상에는 좋은 클럽들이 있습니다. 그 클럽이 가지는 권위를 세상은 인정합니다. 제가 말하는 클럽이란 유흥을 위한 클럽이 아니라 경제인들의 모임이라든가, 어떤 자원봉사의 목적으로 모이는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모임보다 못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적어도 과거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목사를 보면 모자를 벗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목사 알기를 우습게 하는 시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악해서 만이 아닙니다. 물량주의, 세속주의로 물들여져 가는 교회를 세상을 들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고인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직임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지만 거룩함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개혁한다는 것은 무엇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그램 몇 가지를 도입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순서를 바꾸고 성전의 환경미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개혁이란 본질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그 교회의 본질을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교회가 개혁하려면 예수님이 가시고 계셨던 교회의 청사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음부의 권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감히 교회를 판단할 수 없는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거룩함도 개혁하지 않으면 세속의 비가 젖도록 되어 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론은 거창한 이론과 신학적 논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단순한 진리입니다.